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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재 교수, <삶과 문화>아이스버킷과 짐승의 시간
- 관리자 |
- 2015-01-05 10: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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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문화> 아이스버킷과 짐승의 시간
8월 14일 얼음물을 뒤집어 쓴 마크 저커버그가 빌 게이츠를 다음 아이스버킷 챌린지 당사자로 지목했다. 같은 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주리에서 벌어진 경관에 의한 흑인 대학생 총기살해 사건에 대한 담화를 발표했다. 8월 22일 한국의 여당 대표가 얼음물 샤워하는 장면을 한 종편 방송사가 생중계했다. 같은 날 40일간 단식을 이어오던 유민 아빠가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보다 중요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힐난은 발상지인 미국에서도 적지 않게 터져 나왔다. 국내에서는 희귀병에 대한 관심보다 홍보나 인맥 과시용으로 이를 이용한다는 비판이 더해졌다. 물론 놀이와 선행이 결합된 소셜테이닝을 너무 엄숙하게 재단할 필요가 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다수의 사람이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리지어 하는 행동을 집합행동이라고 한다. 이런 뜻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집합행동이다. 하지만 조직과 리더십에 기반한 집합행동과 순수한 자발성에 입각한 집합행동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80, 90년대 대학생들의 데모가 명시적으로 합의된 목적과 리더십을 통해 조직화되었다면, 아이스버킷 챌린지 처럼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집합행동에서는 단일한 목적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경우가 드물다. 원래의 목적이 느슨해지면 개인들의 다양한 동기들이 두드러진다. 장발장도 최후의 순간엔 바리케이드가 아니라 은촛대를 응시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자들이 자신의 인맥을 좀 과시했다고 해서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지난 주말 뉴욕타임스는 시리아ㆍ이라크 이슬람국가(ISIS)에 대한 정보기관의 평가를 기사화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ISIS의 위력은 군사력이나 잔혹함에 국한되지 않는다. ISIS는 다국어 트위터 계정을 통해 동영상과 사진을 활발히 유통시키고 있는데, 지금까지 수많은 북미와 유럽의 젊은이들을 끌어 들일만큼 성공적이었다. 얼마 전 지구촌을 경악에 빠뜨렸던 미국 기자 참수 동영상의 출연자 또한 이런 경로로 ISIS에 뛰어든 영국 젊은이였다.
ISIS의 성공은 컴퓨터 통신 기술이 사람들 사이의 탈권위적 연대를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에 공헌할 것이라는 기술결정론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시리아와 이라크로부터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에는 추상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의 규범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극단주의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수단의 규범을 포기했다는 건, 사실상 목표 자체에 대한 사고를 멈추었다는 것을 뜻한다. ISIS는 컴퓨터 통신 기술을 이용해 목표에 대한 숙고 과정을 생략한 맹목적 집합행동을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내고 있다.
서울 거리에선 자녀의 영정을 안고 단식하는 부모들 옆에서 폭식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이 행사를 주도한 한 ‘자유대학생’에 따르면 유민 아빠의 삶의 의욕을 고취시켜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폭식의 목적이다. 이 간단한 진술을 가로지르고 있는 이중삼중의 모순은 이들이 내적으로 일관된 목적을 만들 능력도 의도도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요한계시록 13~14장은 악마의 표식을 이마에 새긴 이들과 그리스도의 표식을 이마에 새긴 이들의 대립을 기술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는 일체의 소통과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들이 서로 다른 도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에 아예 도덕이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목표와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고민 없이 손쉽게 만들어지는 집합행동은 악마의 표식을 이마에 새기는 것과 같다. 이들이 자기 행동에 대해 갖는 믿음은 상대방이 제거돼야 하는 이유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들의 SNS엔 유민이 아빠 굶어 죽으라는 말이 스스럼 없이 올라온다.
훗날 주석가들은 이 요한계시록 기사를 가리켜 “짐승의 시간”이라고 불렀다. 이는 김근태가 자신의 고문 경험을 빗대어 부른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실천하는 양심들이 모여 집합행동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의 방향이 정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떠난 자리, 우리는 새로운 짐승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사회학)
기사원문보기
http://www.hankookilbo.com/v/9b44d5b44c1c4e87b6c9fd78402cb0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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