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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성주 교수,<문화산책> 역사적 트라우마의 망각
  • 관리자 |
  • 2014-09-02 1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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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는 잊지말아야 할 기억
아픈 상처지만 들쑤시는 용기 필요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던 봄꽃 소식으로 전국은 싱그러운 봄 소식과 꽃향기로 한 걸음 먼저 들썩였다. 벌써, 오래전 일인 듯 기억이 새삼스럽다. 죽은 듯 얼어 있던 대지가 놀랍도록 사랑스러운 초록 세상을 일궈내는 길목에서 한 걸음 먼저 꽃을 피워내는 4월은 T.S. 엘리엇이 그려내었듯, 죽은 이들에 대한 기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가녀린 생명의 신비와 그에 대한 놀라움을 실감하게 하는 자연의 축복임을 기억하게 했었다. 메마른 대지 위에 눈꽃송이처럼 피어나던 봄꽃들이며, 푸릇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과 놀라움은 경탄을 넘어, 잊고 싶지 않았던 고통의 기억조차 잊게 하는 과연 ‘잔인한’ 달이었다. 잊고 싶지 않은 아픔을 잊게 할 만큼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생명력에 대한 감성은 기억해야 할 것과 망각해도 좋은 것을 구분해야 하는 우리의 이성을 뒤흔들기도 한다.

늘 그렇듯, 자연은 빠르게 순환하며, 우리에게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던가, 온통 새롭게 피어나는 꽃 소식에 들떠 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주변은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계절에 적응하느라, 마음 설레면서 가슴과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봄꽃의 기억을 잠시 잊고 있다. 하긴 잠시 잊어도 좋은 기억이리라.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망각한다. 공동체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를 돌이킨다면, 잊어도 좋은 것과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근대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대표적인 사건이 ‘위안부’ 문제가 아닐까.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이 우리에게 안겨준 트라우마의 기억 또한 잠시 잊었다, 필요할 때 떠올리면 되는 그러한 대상일까.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래서 일상적 삶에 불편함이나 거북함이 망각의 탓으로 돌려져도 되는 것일까.

원자폭탄 투하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그려낸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는 “나는 치유할 수 없는 기억을 갖기를 열망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원인이 무엇이 되었든,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가 존재한다면, 비록 그 기억이 아픔이며, 무거움일지라도, 결코 쉽게 잊어서는 안 될 충분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조선 여성들이 ‘위안부’로 강요되었으며, 그녀들이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고통과 상처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실체’가 분명 존재한다면,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흔적을 ‘현재성’으로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쯤이면, 대충 정리되어도 좋은 것은 아닐까 하는 방관자적 시선이나 무관심은 가해자의 역사의식보다 더욱 두려운 대상이다. 역사적 폭력의 실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해자는 부담감 때문에 사건을 잊고 싶어한다. 피해자 역시 과거의 고통을 돌이켜야 하는 힘겨움 때문에 사건을 망각하는 데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인다. 

아픈 상처를 들쑤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겨우 아물어 가는 듯 보이는 나의 상처를 들쑤시기란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위안부 강제 모집과 운영에 대한 진상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하는 우리의 어머니들은 ‘용감한 외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오월 어머니회’ 어머니들 역시, 죽임을 당한 자식들의 보상이나 기념비의 제작이 아니라, 진상 파악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한다. 2차 대전 당시 희생되었던 유대인들의 죽음에 대한 보상과 기념비 제작이 가해자 처벌과 사과보다 중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사적 트라우마는 망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현재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봄꽃처럼 꽃다웠던 아름다운 시절을 억울하고 기가 막히게 살아왔던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우리도 당신들처럼 역사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선물을 준비해야 하겠다. 내년이면 또 찾아올 봄꽃에 대한 설레었던 기억을 잊을 수는 있어도, 당신들의 용감하고 올곧은 외출이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분 한 분께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다.

우성주 한국과학기술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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