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 콜로키움
- [GSCT 콜로키움] 05.11 (화) | 한경순 (건국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 관리자 |
- 2021-05-20 13:24:02|
- 661
일시 : 2021. 5. 11. (화) 오후 4:00~5:30
장소 : 비대면강연(ZOOM)
주제 : 한국 사찰벽화의 보존
연사 : 한경순 (건국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학력
[강연 내용]
이번 강연은 불교 벽화를 중심으로 합니다. 우리나라의 벽화라고 하면 대중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주로 서양의 프레스코 많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저도 보존을 공부하는 것 역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보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의 벽화들이 많이 평가가 절하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한국의 벽화에서는 대중적인 편에 속합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가 고려의 불화와 더불어 큰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남쪽에는 고분 벽화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사찰 벽화의 경우는 종교적인 색채를 갖기 때문에 많이 훼손도 있었고 비종교인에게는 거리감을 갖고는 합니다. 한반도에는 서기 4세기 중후반에 중국의 남조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 미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불교는 17세기가 되면서 우리나라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 문화재, 특히 불교의 그림은 특히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는데, 외세의 침입이 대표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외세의 침입을 받아, 이때 사찰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 사찰의 장식적인 요소인 벽화는 훼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불교 벽화는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본 강연의 주제는 이러한 불교의 벽화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이 문화기술대학원의 기술들을 통해서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아 있는 불교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의 부석사 조사당의 벽화 입니다.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사찰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지이기도 합니다. 부석사는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사찰로 전형적인 산지가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의 조사당에 있는 여섯 점의 벽화들이 국보로 지정된 불교 벽화들입니다. 이 그림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해체되었습니다. 일본으로의 반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낡은 건물로부터 보존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던지, 정확한 목적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봉정사에도 주목할 만한 불교 벽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도 방문한 봉정사는 작은 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을 지닌 절입니다. 봉정사의 불교 벽화는 정확한 명문이 없기 때문에 학자마다 그 만들어진 시기가 엇갈립니다. 조선 초기의 벽화로 훼손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말선초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그림임에도 고려 시대의 냄새가 매우 짙습니다. 얼굴 부분을 긁어서 얼굴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상하건데, 파불에 의한 훼손으로 추정이 됩니다. 무위사의 불교 벽화는 불상 뒤에 있는 후불 벽으로 봉정사의 벽화와 함께 비단에 그려지는 탱화 이전에 그 탱화의 기능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이러한 양식은 임진왜란을 이후로 벽화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탱화의 형태로 변화했으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주체적으로 어떠한 보존의 움직임을 보인 것은 1956년에 극락적의 벽화에서부터입니다. 건물이 오래되다보면, 그 건물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건물의 벽화를 해체하여 박물관에 보관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찰들의 벽화들이 해체되어 보관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벽화들의 원본들이 많이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에는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재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벽화를 장식적인 요소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벽화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1990년대만 해도 벽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25년전부터 과학적 조사의 체계를 잡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3년도 되어서 여러 분야의 지원을 받아 벽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벽화는 어떻게 조성이 되어 있는지 대체로 문헌이 아닌 구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 많습니다. 어떤 흙을 썼으며, 그 흙의 조성은 어떠하며, 어떠한 풀을 혼합했으며, 그 구조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다만, 파기조사의 특성상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모든 벽을 다 뜯어서 해체를 할 수가 없고, 유실되서 문제가 있는 벽화들에 한해서만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벽화에 사용되는 안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많은 안료에 대한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사찰벽화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안료는 어느정도 찾아냈습니다. 다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는데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재홍 교수님께 딥 러닝과 AI라는 키워드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벽화에 기기를 가져만 대어도 어떤 안료를 사용했는지 분석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분석은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년에도 수십곳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가 조성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국가에서 정보선터를 개설해서 자료를 보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질 것입니다. 안료를 공부하다보면 동서양을 비롯해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대부분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두 가지 경우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벽화에 대한 손상 원인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남아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사찰변화인데,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조선사회의 특성상 사찰벽화들이 산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지가람과 같은 환경적 요인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특성이 벽화 보존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온도 편차도 40도 이상이고 건기와 우기의 습도도 50%이상 변합니다. 그것은 결국 사찰벽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비, 바람, 지하수와 같은 것들이 영향을 줍니다.
흔히 손상유형을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인위적으로 구분을 합니다. 이런 구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흙으로 된 벽화는 벌레들이 살고 알을 낳고 애벌레가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성충이 될 때까지 자라면서 벽화 안에 유기물을 섭취합니다. 또한, 잘못된 보수나 낙서같은 요인도 영향을 미칩니다.
봉정사 벽화의 예시인데, 벽화는 비단이나 종이에 그리는 것처럼 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필력을 자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벽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잘 그렸습니다. 이것이 고려 벽화의 특성인데 아쉽게도 손상이 많이 되었습니다. 1999년도의 사진인데 건물이 틀어지다보니 벽이 깨졌습니다. 건물을 해체하다보니 벽화도 해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3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손상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건물에서 해체하여 별도의 장소에 보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벽화는 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벽화로서의 미학적 정체성이 다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해당 작업을 할 때 딜레마를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분리해서 보관하여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것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추후에 복원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리한지도 22년이 지나서 보존후 재처리가 필요합니다. 현재 박물관에 볼 수 있게끔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무위사 벽화 29점의 예입니다. 현재 허름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예산을 편성해서 새로 박물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보존처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가역성입니다. 원형을 존중해서 언제든지 부가적으로 추가되는 부분들이 쉽게 제거되는 것인데, 그 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시멘트나 알루미늄 샤시, 비닐봉지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2004-5년부터 재처리를 해서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과거에 과격한 정도로 재처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숙제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 위에 덧대어 페인트를 바르면 그림과 붙어서 처리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이런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79년도에 80년 초에 국내에서 재처리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적절한 재처리 조치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흥국사의 예입니다. 다른 벽화들은 흙에다가 그린 데 반해 종이를 벽에 붙인 다음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첩부벽화라고 하는데, 이런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처리도 종이, 벽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종이는 총 열 일곱장의 한지를 붙여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리하고 처리한 후가 큰 변화가 없는데 이는 보존 처리를 잘 했다는 것입니다. 복원과 보존이 마치 기존 것을 새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을 많이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균열같은 부분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제거가 됩니다.
위봉사라는 절의 그림인데, 이 그림을 넣는 이유는 처음으로 X-ray 장비를 사용하여 뼈대와 균열과 같은 벽체의 내부를 살펴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방사능의 문제 때문에 법적으로 허용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감마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금산사는 외부 3층 내부 단층 건물로 되어 있는데, 1991년에 이탈리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국내 전문가들이 다 해체를 한뒤 재조립했는데,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한 작업이었습니다. 유럽의 프레스코에는 적절한 방법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흙벽화에는 적잘하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10년만에 그림들이 다 망가졌습니다. 그 당시 처리했던 것들이 코팅이 되어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187점을 다시 해체를 한 뒤 재처리 해서 박물관에 전시를 했습니다. 현재 당시 사용되었던 합성수지들을 최대한 제거를 했지만 모두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합성수지가 변질이 되면 재처리가 절대 불가능하게 됩니다. 다만 희석해낼 뿐입니다.
박물관에서 보관을 잘 하려면 최소한의 온도 및 습도 조절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을 국가에서 하지 않고 박물관을 갖고 있는 사찰에서 하기 때문에 전기세 약 4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작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석사 벽화 6점은 문제가 생겨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는 상황이고 시간과 경비를 아끼지 않고 처리가 되도록 하는 중입니다. 1926년의 한 신문기사에는 일본에서 부석사 조사당에 손을 대 보관을 했다가 조각조각 썩어버렸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복구 과정은 1916년 해체를 시작했고 1985년에 한 차례 응급 처리를 한 후 2000년에 온도 및 습도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는 환경 조성을 했습니다. 특히 1985년 처리 과정에는 아크릴에 해당하는 성분을 다량 사용해서 전통적인 그림의 느낌이 아닌 페인트칠의 느낌이 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2000년도에는 위급한 부분만 녹여내고 들뜬 부분을 잡아내는 처리를 했는데 20년 정도 지나니 다시 문제가 생겨서 문화재연구소에 이전한 상황입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보통 사찰에 있는 수호신인 사천왕처럼 6폭의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전통 벽화는 아교라는 풀을 사용해서 보존처리를 합니다. 합성수지를 사용하면 당장 처리에는 용이한데 시간이 지나면 페인트가 말라서 덩어리져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1916년 이후 1920년대에는 균열이 일어난 부분을 석고로 메꾸어놨습니다. 당시로서는 적절한 조치였을지 몰라도 석고가 황산칼슘이다보니 색상 변질 등 문제가 생깁니다.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채색층이나 균열층을 살펴보는 것인데요, 많은 연구를 통해 벽화에 최적화된 방식이 개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열화상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건 초음파로 벽의 마감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열화상과 초음파를 함께 사용해서 손상 도면을 분석하곤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수집한 시료를 분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복구가 불가능한 것들을 대상으로만 가능하고 정량적으로 물성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XRF 등을 사용합니다.
벽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즉 채색입니다. 최근에는 채색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자외선(UV), 적외선(IR)을 사용합니다. 자외선은 보수한 부분이나 덧칠한 부분을, 적외선은 밑그림까지 볼 때에 사용해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글씨나 밑그림 흔적, 명문이 있던 자리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조사당 벽화를 적외선 카메라로 보면 덧칠이 매우 많고 손상이 큽니다. 비록 아직 벽화에는 적용 단계에 있지만 테라헤르츠, 초분광 카메라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낸 조사당 벽화의 채색 안료는 황토, 백토, 주사, 동녹, 금 등입니다. 벽을 만들 때에 주 원료는 흙과 모래이지만 벼 여물 등 식물성 섬유질도 넣어 균열에 강하고 오래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조사당 중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놓은 나무 틀은 편백나무가 사용되었는데 조재와 만재 부분이 겹쳐 있습니다.
아주 작은 시료하나로 해결을 해야하는데 샘플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서 힘듭니다. GPR 사진인데 방사능 사진이 바깥으로 못 나옵니다. 나무 위에 흙을 바른 것이 보입니다. 효과가 꽤 좋아서 감마 사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면을 그려봤습니다. 결론 말씀드리겠습니다. 벽화가 중심이다 보니깐 사실 과거에 아크릴에멀젼 수지를 굉장히 많이 썼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사찰 벽화의 가장 큰 숙제 이고, 그리고 이게 건물에서 벽화가 자꾸 띕니다. 과연 이것을 원위치에 되돌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보관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이게 큰 숙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흙벽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숙제입니다. 다양한 광원을 가지고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성이 있어야합니다. 벽화는 직접 가서 조사해야합니다. 광원을 이용하면 비파괴적으로 충분히 벽화를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보존 학문에서 여러분은 다른 엔지니어만큼 해당 분야의 엔지니어링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인문학을 융합하여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제 강연은 여기까지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Q. 불화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던데 얼굴이 특히 훼손되는데에는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오래되면 자연스레 훼손이 되는데 다른 부분은 수정을해도 얼굴 부분은 수정을 잘 안해서 그렇습니다. 불상의 경우엔 구조적으로 목이 취약해서 잘 부숴집니다.
Q. 숭례문 천장의 용 문양이 복원될때 바뀌어서 복원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게 보존에 있어서 윤리, 미학 등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장 오래된것만이 진실인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숭례문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때 바뀌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대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용이 왕을 의미하고 왕은 백성과 친해져야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모습의 용을 그렸습니다. 조선 후기의 용을 넣었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부처님이 불교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걸 보시면 탐탁치 않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이 생각해본 문제입니다. 유럽에 성당이 굉장히 많죠?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죠. 불교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이 금으로 발라달라고한적이 없죠. 저는 과잉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를 보존하지만, 작품을 평가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가려 받지 않듯, 종교 문화재를 받게 되면 보존작업에 충실히 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문화재의 최종 상속자가 아니며 과도기에서의 관리의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Q. 지금도 백년, 천년 뒤에는 문화재가 될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의 문화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부터 형성되거나 디지털의 성격을 띠는 특성을 가지는데, 복원과 보존에 있어 어떤 접근이 옳을까요?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같이 작품의 수명이 다하는 경우도 있고 대지미술, 퍼포먼스처럼 이벤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엔 작가의 의도에 맞추어 보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다. 미래의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아카이빙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Q. 보존의 관점에서 고분벽화와 사찰벽화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북한에 있는 고분벽화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우선 고분벽화는 보존이 훨씬 어렵습니다. 땅굴 속 그림이기 때문에 환경을 제어하기 힘들며, 손상원인이 복합적이며 지진에 의한 피해에 대한 대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산소가 희박하여 조사작업도 어려우나, 다양한 원인을 규명하게 됩니다. 2007, 2008년에 평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남북관계가 이슈가 될 때마다 연구가 지속되기 어려워졌습니다.
Q. 문화재 보존에 관해서는 유달리 정치적인 개입이 크며 때론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보존하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신안 앞바다에서 20평짜리 방 5개를 채울만큼의 양의 해저 유물이 발견되었을 때, 1주일 만에 형태를 못 알아볼 정도로 녹슬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양국립문화재연구소 등 보존과학 관련 예산이 편성되었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 탔을 때, 전통재료와 전통건축방식에 대한 예산이 편성되었고 현재 미술품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서야 국립기관이 잡히게 되었으나, 과거에는 모두 단타로 이루어져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배타적인 연구문화가 남아있으나 융복합 연구가 가장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장소 : 비대면강연(ZOOM)
주제 : 한국 사찰벽화의 보존
연사 : 한경순 (건국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학력
- 국립 상트페테르부르그 헤르젠대학교 예술학 박사 졸업 (2005)
- 고려대학교 미술학 석사 졸업 (1999)
- 국립 로마 문화재 보존학교 보존학 석사 졸업(1994)
- 인하대학교 미술학 학사 졸업 (1989)
경력
- 대한민국 문화재위원 (2017.05-Present)
- 충청북도 문화재위원 (2012.01-Present)
- 건국대학교 교수 (2005.03-Present)
- 경주대학교 교수 (2000.03-2005.02)
- C.N.R Con. Lab 연구원 (1991.02-1994.11)
-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위원(문화재보존) (2004.03-Present)
- 문화재청 전문위원(회화보존) (2004.04-2016.04)
- 국무총리실 자문위원(문화재보존) (2004.03-2005.02)
- 문화재청 감정위원(회화분야) (2000.04-2004.03)
강연 소개
종교적 행위로서 파생되는 불교 예술품은 매우 다양하겠으나, 시각적인 효과를 구체화시키는 불교벽화는 종교적 표현 의지로서 고대부터 끊임없이 제작되고 변화해온 대표적인 종교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찰벽화는 불교 표현 매체로서의 시각적 효과와 함께 예배의 공간과 함께 공존한다. 또한 역사적 증거와 학술적 미술사적 자료를 제공해 주는 사찰벽화는 우리와 선대에 있어 종교적 지식 전달의 매개체인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찰벽화는 다른 유물에 비해 벽화가 위치한 산지가람의 급격한 온, 습도 변화와 같은 환경적 요소와 건물에 귀속된 관계에서 발생하는 목조건축의 변형으로 인한 물리적 파손, 그리고 사찰벽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재료적 한계성으로 인해 오랜 세월을 유지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한국 사찰벽화는 다른 문화재들과는 그 수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며, 보존 및 관리 그리고 지속적인 보존방안과 그에 관한 연구 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강연 내용]
- 불교벽화 개요
이번 강연은 불교 벽화를 중심으로 합니다. 우리나라의 벽화라고 하면 대중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주로 서양의 프레스코 많이 떠오르고는 합니다. 저도 보존을 공부하는 것 역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보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의 벽화들이 많이 평가가 절하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가 한국의 벽화에서는 대중적인 편에 속합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가 고려의 불화와 더불어 큰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남쪽에는 고분 벽화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사찰 벽화의 경우는 종교적인 색채를 갖기 때문에 많이 훼손도 있었고 비종교인에게는 거리감을 갖고는 합니다. 한반도에는 서기 4세기 중후반에 중국의 남조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 미술을 하기 시작합니다. 불교는 17세기가 되면서 우리나라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 문화재, 특히 불교의 그림은 특히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는데, 외세의 침입이 대표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외세의 침입을 받아, 이때 사찰이 피해를 보게 되고 그 사찰의 장식적인 요소인 벽화는 훼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불교 벽화는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본 강연의 주제는 이러한 불교의 벽화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이 문화기술대학원의 기술들을 통해서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남아 있는 불교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 말의 부석사 조사당의 벽화 입니다.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사찰로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배경지이기도 합니다. 부석사는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사찰로 전형적인 산지가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의 조사당에 있는 여섯 점의 벽화들이 국보로 지정된 불교 벽화들입니다. 이 그림들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해체되었습니다. 일본으로의 반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낡은 건물로부터 보존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던지, 정확한 목적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봉정사에도 주목할 만한 불교 벽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도 방문한 봉정사는 작은 절임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을 지닌 절입니다. 봉정사의 불교 벽화는 정확한 명문이 없기 때문에 학자마다 그 만들어진 시기가 엇갈립니다. 조선 초기의 벽화로 훼손이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다. 여말선초에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조선 시대의 그림임에도 고려 시대의 냄새가 매우 짙습니다. 얼굴 부분을 긁어서 얼굴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예상하건데, 파불에 의한 훼손으로 추정이 됩니다. 무위사의 불교 벽화는 불상 뒤에 있는 후불 벽으로 봉정사의 벽화와 함께 비단에 그려지는 탱화 이전에 그 탱화의 기능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이러한 양식은 임진왜란을 이후로 벽화의 훼손을 피하기 위해 탱화의 형태로 변화했으리라고 추측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주체적으로 어떠한 보존의 움직임을 보인 것은 1956년에 극락적의 벽화에서부터입니다. 건물이 오래되다보면, 그 건물이 더 이상 버티질 못합니다. 그래서 건물의 벽화를 해체하여 박물관에 보관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찰들의 벽화들이 해체되어 보관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벽화들의 원본들이 많이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이는 한국에는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재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벽화를 장식적인 요소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벽화 보존 및 안료 분석을 위한 과학적 체계 확립
조선시대 벽화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1990년대만 해도 벽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25년전부터 과학적 조사의 체계를 잡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03년도 되어서 여러 분야의 지원을 받아 벽화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벽화는 어떻게 조성이 되어 있는지 대체로 문헌이 아닌 구전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과학적 조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 많습니다. 어떤 흙을 썼으며, 그 흙의 조성은 어떠하며, 어떠한 풀을 혼합했으며, 그 구조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다만, 파기조사의 특성상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모든 벽을 다 뜯어서 해체를 할 수가 없고, 유실되서 문제가 있는 벽화들에 한해서만 조사가 실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벽화에 사용되는 안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많은 안료에 대한 분석을 실시했습니다. 사찰벽화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안료는 어느정도 찾아냈습니다. 다만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있는데 더 많은 데이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안재홍 교수님께 딥 러닝과 AI라는 키워드를 많이 들었는데,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벽화에 기기를 가져만 대어도 어떤 안료를 사용했는지 분석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분석은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년에도 수십곳을 하는 것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브가 조성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근 국가에서 정보선터를 개설해서 자료를 보강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질 것입니다. 안료를 공부하다보면 동서양을 비롯해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대부분 기존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두 가지 경우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습니다.
- 벽화의 손상에 대한 연구 및 재처리 작업
벽화에 대한 손상 원인에 대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남아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사찰변화인데, 숭유억불 정책을 펴던 조선사회의 특성상 사찰벽화들이 산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지가람과 같은 환경적 요인 뿐만 아니라,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특성이 벽화 보존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온도 편차도 40도 이상이고 건기와 우기의 습도도 50%이상 변합니다. 그것은 결국 사찰벽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줍니다. 비, 바람, 지하수와 같은 것들이 영향을 줍니다.
흔히 손상유형을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인위적으로 구분을 합니다. 이런 구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흙으로 된 벽화는 벌레들이 살고 알을 낳고 애벌레가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성충이 될 때까지 자라면서 벽화 안에 유기물을 섭취합니다. 또한, 잘못된 보수나 낙서같은 요인도 영향을 미칩니다.
봉정사 벽화의 예시인데, 벽화는 비단이나 종이에 그리는 것처럼 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필력을 자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벽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게 잘 그렸습니다. 이것이 고려 벽화의 특성인데 아쉽게도 손상이 많이 되었습니다. 1999년도의 사진인데 건물이 틀어지다보니 벽이 깨졌습니다. 건물을 해체하다보니 벽화도 해체를 하게 되었습니다. 3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각각의 손상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건물에서 해체하여 별도의 장소에 보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벽화는 벽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벽화로서의 미학적 정체성이 다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해당 작업을 할 때 딜레마를 경험했습니다. 그래도 최종적으로 분리해서 보관하여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것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추후에 복원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리한지도 22년이 지나서 보존후 재처리가 필요합니다. 현재 박물관에 볼 수 있게끔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무위사 벽화 29점의 예입니다. 현재 허름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어서 예산을 편성해서 새로 박물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보존처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가역성입니다. 원형을 존중해서 언제든지 부가적으로 추가되는 부분들이 쉽게 제거되는 것인데, 그 전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시멘트나 알루미늄 샤시, 비닐봉지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2004-5년부터 재처리를 해서 현재 보관하고 있습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과거에 과격한 정도로 재처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숙제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 위에 덧대어 페인트를 바르면 그림과 붙어서 처리하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이런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79년도에 80년 초에 국내에서 재처리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적절한 재처리 조치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흥국사의 예입니다. 다른 벽화들은 흙에다가 그린 데 반해 종이를 벽에 붙인 다음 그린 것이 특징입니다. 이를 첩부벽화라고 하는데, 이런 사례가 많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처리도 종이, 벽 전문가들과 함께 협업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종이는 총 열 일곱장의 한지를 붙여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리하고 처리한 후가 큰 변화가 없는데 이는 보존 처리를 잘 했다는 것입니다. 복원과 보존이 마치 기존 것을 새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을 많이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균열같은 부분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제거가 됩니다.
위봉사라는 절의 그림인데, 이 그림을 넣는 이유는 처음으로 X-ray 장비를 사용하여 뼈대와 균열과 같은 벽체의 내부를 살펴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방사능의 문제 때문에 법적으로 허용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감마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금산사는 외부 3층 내부 단층 건물로 되어 있는데, 1991년에 이탈리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국내 전문가들이 다 해체를 한뒤 재조립했는데,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격한 작업이었습니다. 유럽의 프레스코에는 적절한 방법이었지만 우리나라의 흙벽화에는 적잘하지 않은 방식이었습니다. 10년만에 그림들이 다 망가졌습니다. 그 당시 처리했던 것들이 코팅이 되어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187점을 다시 해체를 한 뒤 재처리 해서 박물관에 전시를 했습니다. 현재 당시 사용되었던 합성수지들을 최대한 제거를 했지만 모두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합성수지가 변질이 되면 재처리가 절대 불가능하게 됩니다. 다만 희석해낼 뿐입니다.
- 벽화의 보존을 위한 조건
박물관에서 보관을 잘 하려면 최소한의 온도 및 습도 조절이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영을 국가에서 하지 않고 박물관을 갖고 있는 사찰에서 하기 때문에 전기세 약 4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작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석사 벽화 6점은 문제가 생겨서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는 상황이고 시간과 경비를 아끼지 않고 처리가 되도록 하는 중입니다. 1926년의 한 신문기사에는 일본에서 부석사 조사당에 손을 대 보관을 했다가 조각조각 썩어버렸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복구 과정은 1916년 해체를 시작했고 1985년에 한 차례 응급 처리를 한 후 2000년에 온도 및 습도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는 환경 조성을 했습니다. 특히 1985년 처리 과정에는 아크릴에 해당하는 성분을 다량 사용해서 전통적인 그림의 느낌이 아닌 페인트칠의 느낌이 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2000년도에는 위급한 부분만 녹여내고 들뜬 부분을 잡아내는 처리를 했는데 20년 정도 지나니 다시 문제가 생겨서 문화재연구소에 이전한 상황입니다. 부석사 조사당 벽화는 보통 사찰에 있는 수호신인 사천왕처럼 6폭의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전통 벽화는 아교라는 풀을 사용해서 보존처리를 합니다. 합성수지를 사용하면 당장 처리에는 용이한데 시간이 지나면 페인트가 말라서 덩어리져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생깁니다. 1916년 이후 1920년대에는 균열이 일어난 부분을 석고로 메꾸어놨습니다. 당시로서는 적절한 조치였을지 몰라도 석고가 황산칼슘이다보니 색상 변질 등 문제가 생깁니다. 많이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는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채색층이나 균열층을 살펴보는 것인데요, 많은 연구를 통해 벽화에 최적화된 방식이 개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열화상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건 초음파로 벽의 마감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열화상과 초음파를 함께 사용해서 손상 도면을 분석하곤 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수집한 시료를 분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복구가 불가능한 것들을 대상으로만 가능하고 정량적으로 물성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XRF 등을 사용합니다.
벽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즉 채색입니다. 최근에는 채색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자외선(UV), 적외선(IR)을 사용합니다. 자외선은 보수한 부분이나 덧칠한 부분을, 적외선은 밑그림까지 볼 때에 사용해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글씨나 밑그림 흔적, 명문이 있던 자리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조사당 벽화를 적외선 카메라로 보면 덧칠이 매우 많고 손상이 큽니다. 비록 아직 벽화에는 적용 단계에 있지만 테라헤르츠, 초분광 카메라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낸 조사당 벽화의 채색 안료는 황토, 백토, 주사, 동녹, 금 등입니다. 벽을 만들 때에 주 원료는 흙과 모래이지만 벼 여물 등 식물성 섬유질도 넣어 균열에 강하고 오래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조사당 중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놓은 나무 틀은 편백나무가 사용되었는데 조재와 만재 부분이 겹쳐 있습니다.
- 우리나라 사찰 벽화 보존의 숙제
아주 작은 시료하나로 해결을 해야하는데 샘플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아서 힘듭니다. GPR 사진인데 방사능 사진이 바깥으로 못 나옵니다. 나무 위에 흙을 바른 것이 보입니다. 효과가 꽤 좋아서 감마 사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도면을 그려봤습니다. 결론 말씀드리겠습니다. 벽화가 중심이다 보니깐 사실 과거에 아크릴에멀젼 수지를 굉장히 많이 썼습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나라 사찰 벽화의 가장 큰 숙제 이고, 그리고 이게 건물에서 벽화가 자꾸 띕니다. 과연 이것을 원위치에 되돌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보관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이게 큰 숙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흙벽을 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숙제입니다. 다양한 광원을 가지고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현장성이 있어야합니다. 벽화는 직접 가서 조사해야합니다. 광원을 이용하면 비파괴적으로 충분히 벽화를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보존 학문에서 여러분은 다른 엔지니어만큼 해당 분야의 엔지니어링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인문학을 융합하여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제 강연은 여기까지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 질의응답
Q. 불화에서 얼굴이 잘 안보이던데 얼굴이 특히 훼손되는데에는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오래되면 자연스레 훼손이 되는데 다른 부분은 수정을해도 얼굴 부분은 수정을 잘 안해서 그렇습니다. 불상의 경우엔 구조적으로 목이 취약해서 잘 부숴집니다.
Q. 숭례문 천장의 용 문양이 복원될때 바뀌어서 복원이 되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게 보존에 있어서 윤리, 미학 등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장 오래된것만이 진실인지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숭례문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때 바뀌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대로 바꾸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용이 왕을 의미하고 왕은 백성과 친해져야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모습의 용을 그렸습니다. 조선 후기의 용을 넣었습니다.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부처님이 불교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걸 보시면 탐탁치 않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정말 많이 생각해본 문제입니다. 유럽에 성당이 굉장히 많죠?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가죠. 불교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이 금으로 발라달라고한적이 없죠. 저는 과잉충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를 보존하지만, 작품을 평가하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가려 받지 않듯, 종교 문화재를 받게 되면 보존작업에 충실히 임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문화재의 최종 상속자가 아니며 과도기에서의 관리의 역할을 하는 것뿐입니다.
Q. 지금도 백년, 천년 뒤에는 문화재가 될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의 문화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부터 형성되거나 디지털의 성격을 띠는 특성을 가지는데, 복원과 보존에 있어 어떤 접근이 옳을까요?
백남준의 다다익선과 같이 작품의 수명이 다하는 경우도 있고 대지미술, 퍼포먼스처럼 이벤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엔 작가의 의도에 맞추어 보존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다. 미래의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 아카이빙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Q. 보존의 관점에서 고분벽화와 사찰벽화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북한에 있는 고분벽화의 현황은 어떠한가요?
우선 고분벽화는 보존이 훨씬 어렵습니다. 땅굴 속 그림이기 때문에 환경을 제어하기 힘들며, 손상원인이 복합적이며 지진에 의한 피해에 대한 대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산소가 희박하여 조사작업도 어려우나, 다양한 원인을 규명하게 됩니다. 2007, 2008년에 평양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남북관계가 이슈가 될 때마다 연구가 지속되기 어려워졌습니다.
Q. 문화재 보존에 관해서는 유달리 정치적인 개입이 크며 때론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보존하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요?
신안 앞바다에서 20평짜리 방 5개를 채울만큼의 양의 해저 유물이 발견되었을 때, 1주일 만에 형태를 못 알아볼 정도로 녹슬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해양국립문화재연구소 등 보존과학 관련 예산이 편성되었습니다. 국보 1호 숭례문이 불 탔을 때, 전통재료와 전통건축방식에 대한 예산이 편성되었고 현재 미술품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제서야 국립기관이 잡히게 되었으나, 과거에는 모두 단타로 이루어져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기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배타적인 연구문화가 남아있으나 융복합 연구가 가장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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